[한국사 최대 미스터리]
백제 동성왕 시기에 벌어진 3회에 걸친 백제와 북위의 전쟁
일단 왜 일어났는지가 미스터리
이 두 국가는 외교적으로 마찰이 있는것도 아니었고 직접 영토가 맞닿아 영토 분쟁을 하는 사이도 아니었고 북위가 백제에 침입했다면 육지로 가기에는 당시 대치중이었던 고구려가 길을 열어줬을까 하는 의문이 들고
배를 타고 바닷길로 가기에는 북위는 기마부대이고, 북위의 민족인 선비족은 유목민족이라 해전에 익숙 하지도 않을텐데
게다가 이렇게 무리수를 두기에는… 요동에서는 고구려와 대치중이었고..
남변에서는 남조의 송나라와도 대치중이라 전장을 나누는건 북위에게 크게 불리한 상황
왜 북위는 3회에 걸쳐 바다건너 백제에 쳐들어 왔을까요?
484년
영평 2년 위나라 오랑캐가 공격하여 백제왕 변도를 크게 격파했다.<건강실록>
백제국은… 후위 효문제가 무리를 보내 (백제를) 정벌해서 격파했다.<통전>
백제국은… 후위 효문제가 군사를 보내 (백제를) 정벌해서 격파했다.<태평환우기>
봄 2월 왕이 고구려가 제의 책봉을 받았다는 말을 듣고 사신을 보내어 표를 올리고 내속(內屬)하기를 청하니, 이를 허락하여 왕에게 대도독 백제제군사 진동대장군 백제 왕(大都督百濟諸軍事鎭東大將軍百濟王)을 제수하였다. 내법 좌평(內法佐平) 사약사(沙若思)를 제에 보내어 조공하려 하였으나 서해 가운데서 고구려의 바다를 순찰하는 군사를 만나 더 나아가지 못하고 돌아왔다.<백제 본기>
7월 고구려가 북변을 침범하므로 우리 군사는 백제와 협력하여 이를 모산성 아래에서 크게 격파하였다.<신라 본기>
겨울 10월 위에 사신을 보내 조공하였다. 그때 위는 우리나라가 강하다고 생각하여, 여러 나라 사신의 숙소를 두는데, 제의 사신을 첫 번째로, 우리 사신을 그 다음으로 두었다. <고구려 본기>
<488년>
영명 6년 위가 군사를 보내 백제를 공격했으나 백제에게 패하였다.<자치통감>
봄 2월 위에 사신을 보내 조공하였다. 여름 4월 위에 사신을 보내 조공하였다. 가을 윤 8월 위에 사신을 보내 조공하였다.<삼국사기 고구려 본기>
<490년>
이 해에 魏虜가 또 騎兵 수십만을 동원하여 백제를 공격하여 그 境界에 들어 가니 牟大가 장군 沙法名‧贊首流‧解禮昆‧木干那를 파견하여 무리를 거느리고 虜軍을 기습 공격하여 그들을 크게 무찔렀다.<남제서 백제전>
지난 庚午年(490년)에 獫狁이 잘못을 뉘우치지 않고 군사를 일으켜 깊숙히 쳐들어 왔습니다. 臣이 沙法名 등을 파견하여 군사를 거느리고 역습케 하여 밤에 번개처럼 기습 공격하니, 匈梨가 당황하여 마치 바닷물이 들끓듯 붕괴되었습니다. 이 기회를 타서 쫓아가 베니 시체가 들을 붉게 했습니다. 이로 말미암아 그 예리한 기세가 꺾이어 고래처럼 사납던 것이 그 흉포함을 감추었습니다.<남제서 백제전>
가을 7월 위에 사신을 보내 조공하였다. 9월 위에 사신을 보내 조공하였다.<삼국사기 고구려 본기>
7월에 북부 사람 15세 이상을 징발하여 사현과 이산의 두 성을 쌓았다. 9월에 왕이 나라 서쪽의 사비원에서 사냥을 하였다. 연돌을 배하여 달솔을 삼았다. 11월에 얼음이 얼지 않았다.<삼국사기 백제 본기>
사료상 백제와 북위와의 전쟁은 484년, 488년, 490년에 있었으며, 484년 전쟁에서 북위가 백제를 이겼으며, 나머지 488년과 490년 전쟁에서는 백제가 북위를 격파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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