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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조선에 방문한 미국 대통령의 딸이 조선을 무시한 이유

by PickUp 2017. 7. 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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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에 방문한 미국 대통령의 딸이 조선을 무시한 이유]


조선에 방문한 미국 대통령의 딸이 조선을 무시한 이유

미국의 제26대 대통령인 ‘시어도어 루스벨트’에게는 ‘앨리스 루스벨트’라는 딸이 있었다.



앨리스는 아버지를 닮았는지 성격이 꽤 괴팍하고 독설가로 유명했는데, 당시 미국인들에게는 앨리스 공주라고 불릴 정도로 사랑을 받고 있었다.

어느 정도였냐면 앨리스의 이름을 딴 색깔과 노래도 존재했고, 그녀를 위해 특별히 만든 옷감의 종류가 있을 정도로 연예인 같은 인기를 얻고 있었다.

게다가 미국 대통령의 딸이기에 정치계에서도 상당한 영향력이 있을 정도였다.




그녀는 1905년 대통령인 아버지의 외교사업을 대신해 수십 명의 의원들과 함께 조선을 방문한다.

당시 고종은 미국의 대통령의 딸이 직접 방문한다는 사실에 미국이 조선에 표하는 우호적인 신호로 판단했고, 이를 기회로 조선을 압박하던 일본의 공격에 대비하고자 했다.

그래서 이들이 방문하면 강대국인 미국과 공동으로 일본의 침략에 대해 방어와 공격을 할 수 있는 군사동맹을 맺으려 했고, 최고의 환영을 표하기 위해 황실에선 황실 가마를 배정했고, 서울의 모든 주택에는 미국의 국기를 게양하는 등의 준비를 했다.

그리고 대한제국행 군함 오하이호 호를 타고 제물포 항에 도착한 앨리스.


그녀는 조선 관료들이 왕실 격식에 따라 할 수 있는 최대한의 경의를 표하는 동안에도 장난스러운 태도를 보였는데, 이는 대한제국 황실에서 의전 담당으로 근무하고 있던 독일 여성 ‘엠마 크뢰벨’의 저서에 기록된다.

엠마 크뢰벨의 저서에 따르면 ‘엄청난 먼지의 폭풍이 우리에게 몰아닥쳤고 그 먼지 속으로부터 위세 당당하게 말을 타고 나타는 여성이 있었다. 그녀는 자주 색의 긴 승마복을 입고 있었는데 한 손에는 승마용 채찍을 입에는 시가를 물고 있었다’고 쓰여있다.




엠마 크뢰벨은 또 ‘전혀 상상하지 않았던 모습으로 나타나 모두에게 충격을 주었는데, 그들은 한국 왕실의 격식에 따라 최대한의 경의에도 왕릉에 세워둔 수호신 조각에 관심이 더 많아 보였는데, 그녀는 조선의 국모였던 명성황후의 무덤가에 세워둔 수호신 조각에 올라타 같이 온 약혼자에게 사진을 찍어달라고 했다’고 말했다.

엠마 크뢰벨의 저서를 보면 앨리스는 외교를 하러 온 사람으로 보이지 않는데, 실제 그녀는 외교 협상을 하기 위한 자리에서도 외교정책을 논의하기는 커녕 수행원들과 술을 마시고 웃고 떠들다가 미국으로 떠났다고 한다.



앨리스가 조선을 방문해 이토록 무례한 짓을 저지른 이유는 훗날 그녀가 쓴 자서전을 통해 알 수가 있었는데..

그녀는 ‘가쓰라-태프트 밀약’이 체결될 것을 미리 알고 있었던 것이다.


<가쓰라-태프트 밀약>

1905년 7월 29일, 미국의 제26대 대통령 시어도어 루스벨트의 특사인 전쟁부(United States Department of War) 장관 윌리엄 태프트와 일본의 총리 가쓰라 다로가 도쿄에서 은밀하게 맺은 협정.

회담이 열린 날짜는 1905년 7월 27일이고, 회담 내용을 담은 각서(memorandum)상의 날짜가 7월 29일이다.

이 밀약은 일제의 식민지배와 필리핀에 대한 미국의 식민지배라는 양국의 이해관계에 대한 상호 확인이었다. 당시 태프트는 전쟁부 장관 업무로 필리핀에 가는 길에 잠시 일본에 들려 이 협약을 맺었다.


그녀의 아버지 시어도어 루스벨트는

“일본이 조선을 병합하는 모습을 보고 싶다”

“조선은 가장 문명이 뒤진 미개한 인종이고, 자치하기에 적합하지 않다”

라며 조선을 무시했고, 필리핀을 차지하고 러시아를 견제하기 위해 한미수호통상조약을 헌신짝처럼 버리고 가쓰라-태프트 밀약을 체결한 것이다.

그리고 이 사건 등으로 조선의 운명은 일본에 넘겨져 지배를 받는 아픈 역사를 겪게 된다.

정작 조선 망국을 재촉한 시어도어 루스벨트는 밀약 체결 이후 ‘동양 평화를 이룬 업적’으로 노벨상을 받았다..

당시 고종은 이 사실도 모른 채 황실에서 할 수 있는 최대한의 격식을 보여주며 대한제국을 구하려고 노력했던 것이다.

덧붙여 26대 대통령인 시어도어 루스벨트가 일본이 한반도를 점령하는데 기여했다면, 촌수로 치면 12촌. 그리고 뉴딜정책으로 유명한 32대 대통령 프랭클린 루스벨트는 그 일본을 개박살내면서 한반도를 일본의 지배에서 독립시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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