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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건,사고,이슈

대대장이 사단장을 권총으로 쏜, 28사단장 살해사건.

by PickUp 2017. 7.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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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대장이 사단장을 권총으로 쏜, 28사단장 살해사건]



1959년 2월 18일 육군 제28보병사단에서 대대장이 사단장을 M1911 권총으로 살해한 사건이 발생한다.

이는 창군 이래 흑역사 중 하나인 사건으로 1959년 국내 10대 뉴스에 선정되었을 정도로 세간을 크게 뒤흔든 사건이다.


 


피해자인 서정철 준장은 1921년 경남 통영 출신으로 이승만 정권 시절 법무부 장관을 지낸 서성환의 손자이다.

일본 주오대학 재학 중 학병으로 징병된 적이 있으며 국방경비대에 입대.


이후 육군사관학교를 2기로 졸업한 뒤, 제3보병사단 부사단장, 육군기갑학교장, 육군본부 작전과장 등을 거치며 미 육근 참모대학 유학 후 1956년 28사단에 임명되었다.


군에서 엘리트 코스를 밟은 인물로 머리가 좋고 영어에도 능숙했다고 하는데, 부하를 마구잡이로 학대하는 정도는 아니었지만 성격이 매우 거세서 부하들에게 일명 '쪼인트 까기'를 한다던가 철모 쓴 머리를 지휘봉으로 내려칠 만큼 과격한 부분도 있었다고 한다.


 


상관인 서정철 준장을 살해한 6297부대 1대대 대대장이던 정구헌 중령도 군 이력은 육사8기, 미 육군보병학교를 우수한 성적으로 수료한 장래 유명한 장교였다.


또한 독실한 개신교 신자로 사생활이 깨끗하고 정의감도 넘치는 인물이었으나, 자존심이 너무 강하여 자신의 생각과 배치되거나 부족하다고 보는 의견은 지휘고하를 막론하고 깔아뭉개거나 얕보는 일이 잦았다고 한다.


때문에 교우관계가 그리 원만치 않았다는 이야기도 있으며, 이 사건도 어찌보면 정구헌 중령의 지나치게 높은 자부심이 빚어낸 참사라고 볼 수 있다.


 

 

▲자료사진

 

당시 28사단에 전투정찰대 운영 시범훈련을 실시하라는 명령이 제6군단(백인엽 군단장, 육군 중장)으로 내려왔고, 백 군단장에게 지시를 받은 서정철 준장은 시범부대로 정구헌 중령이 대대장으로 있는 6297부대 1대대를 지정한다.


서정철 준장은 강도높은 훈련으로 준비하도록 명령을 내렸고, 시범 전날엔 직접 1대대를 방문했다.


그때 1대대는 주둔지 뒷산에서 분대 단위로 시범훈련 중이었는데, 이를 본 서정철 준장은 정구헌 중령에게 화력증강 차원에서 소대 단위로 훈련형태를 바꾸라고 지시한다.


하지만 정구헌 중령은

1. 지형정찰을 새로 해야 한다.

2. 날도 어두워지는데 바꾸면 준비할 시간이 부족하다.

3. 화력증강은 위력정찰이지 수색정찰이 아니다.

라는 이유로 서정철 준장의 지시를 정면으로 반박했다. 게다가 이 이유를 들때 "사단장 각하께서 뭘 모르시고 말씀을 하신다"며 무시하는 언행을 보여 서정철 준장의 심기를 건드렸다.


 

 

▲서정철 준장



이에 발끈한 서정철 준장은 "내가 너한테 정찰훈련 교육을 받으러 온 줄 아냐"면서 지휘봉으로 정구헌 중령의 복부를 서너번 쿡쿡 찔렀는데, 평소 엄격한 사단장의 태도에 불만이 있었데다, 코 앞에 닥친 훈련을 성공적으로 마쳐야 한다는 압박감, 며칠째 밤낮이 없는 훈련에 지칠대로 지쳐 신경이 곤두서 있던 중구헌 중령은 이를 참지못하고 사단장에게 맞선다.


정구헌 중령은 사단장 앞에서 허리에 양손을 올리는 자세로 "이건 너무 심한거 아니냐"며 대놓고 항의했고, 안그래도 거친 성격의 서정철 준장은 이에 격분해 장갑낀 손으로 정구헌 중령의 얼굴을 가격한다.


 


그 바람에 안경이 깨진 정구헌 중령은 "각하 고정하십시오"라며 서정철 준장을 만류했지만, 뚜껑이 열린 서정철 준장은 "너 이자식, 잔소리 집어치우고 당장 내려가!"라며 정구헌 중령에게 고함을 친다.


이때 옆에 있던 연대장 송광보 대령이 서정철 준장을 겨우 말리며 대대장실로 데리고 내려왔는데, 정구헌 중령은 뒤에서 서정철 준장이 권총을 장전하는 듯한 소리를 들었고, '사단장이 나를 쏴버리려는건 아닌가?'라는 피해망상에 사로잡혔다.


  

▲당시 신문에 보도된 사건 상황도

 


대대장실에서도 노기를 풀지 못한 정구헌 중령은 "꼴도 보기 싫으니 당장 나가라"고 고함을 쳤고, 정구헌 중령은 뒷걸음질로 대대장실에서 나오면서 자신의 45구경 권총에 실탄을 장전한다.


이때 권총 장전소리를 듣지 못한 서정철 준장은 뒷문을 따라 정구헌 중령에게 성큼성큼 다가갔는데, 정구헌 중령은 '드디어 날르 쏘려는 구나'라고 오인하여 3m 앞에 있던 서정철 준장을 향해 총을 발사한다.


서정철 준장은 비명도 못지르고 그 자리에서 즉사하였다. 이때 나이는 39세.

 

당시 사건의 이면을 좀 보자면. 당시 국군은 하사관 부족 현상에 시달리고 있었다.


하사관에 대한 처우도 불량했고, 위로는 장교에게 밑으로는 내무반 실세인 상병~병장에게 치닫히는 샌드위치 신세. 당연히 하사관 장기복무를 아무도 지망하려 들지 않던 상황이었다.


어느 정도였는가 하면. 하사관이 너무 부족해 강제로 하사관에 지원하게 된 육군 병사가 총기를 들고 "하사관 지망을 취소하지 않으면 당신을 죽이고 나도 죽겠다"라며 깽판을 치는 일도 적지 않았다고 한다.


그래서 각 부대별로 하사관을 어떻게든 확보하라는 명령이 떨어져있었는데, 정구헌 중령은 "내가 옷을 벗고 말지, 하기 싫다는 사람에게 어떻게 하사관을 시켜" 라고 생각해 하사관 모집을 신경쓰지 않았고, 1대대 하사관 지원율은 사단 최하위였다.


때문에 서정철 장군에게 적지않게 힐난을 당하고 있었다. 이러한 갈등도 이 사건 발생에 한 몫 했다고 볼 수있다.


하지만 이 사건 재판과정에서 '하사관 차출 강요'가 드러난다면 문제화될 것을 꺼려했던 6군단장 백인엽 장군이 사단장 살해 사건을 대대장의 또라이 짓으로 축소시켜 버렸다는 뒷이야기도 있다.


 


덧붙여 서정철 장군은 사단장으로 재직하며 사병들에 대해 정량 급식을 이행하지 않은 장교들을 엄벌했던 당시로선 보기 드문 강직한 장군이었고, 정구헌 중령은 하사관 차출명령 거부 말고도, 부사단장의 쌀 상납 요구를 거절한 경력이 있는 꼿꼿한 군인이었다.


피해자 가해자 모두 군인으로서는 엘리트 코스를 밟은 인재였기에, 당시의 한국군 현실을 보면 안타깝게 보인다.


 


정구헌 중령은 범행 직후 곧바로 특무대에 자수하여 체포되었다. 그는 "서 장군이 나를 쏘려고 권총을 장전하는 소리를 들었다. 그래서 자위권을 행사한 것"이라며 정당방위를 주장했으나 애당초 서 장군의 총에는 실탄이 없었기에 사형이 선고됐다.


그는 1959년 5월 20일 대구 육군정보학교 야외 교정의 산골짜기에서 총살형으로 생을 마감했으며,

- 사건에 대해서는 더 이상 할 말이 없다

- 일흔 살의 노모와 처자식을 남기고 먼저 가는 것이 미안할 뿐이다.

- 앞으로 자신의 개인 목적을 위해 부하들을 구타하거나 혹사시키는 병영 내의 악습이 없어지길 빈다

- 나는 지금까지 양심적으로 신념에 따라 살아왔다고 자부하며, 깨끗이 죽는다고 생각한다.


라는 유언을 남겼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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