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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건,사고,이슈

북한군이 국군 3사단(백골부대)을 두려워하는 이유

by PickUp 2019. 9.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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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군이 국군 3사단(백골부대)을 두려워하는 이유

 

1973년 3월 7일. 우리 군은 UN사와 DMZ표지판 보수를 마치고 복귀하고 있었는데 북한군의 기습 공격을 받아 부상을 입는다

이는 명백한 정전협정 위반이었고, 박정인 사단장은 즉시 포병연대 본부에 전화를 걸어 포격 명령을 내린다

 

그렇게 155, 105mm 포사격으로 북한 초소를 개박살 내버린다

 

 

 

심지어 백린연막탄도 사용했는데, 이 백린연막탄이 북한군 GP내부를 관통하면서 폭발했고 그 안에 상주하던 북한군 36까지 몰살시켜버린다


백린은 발화점이 60℃ 정도로 매우 낮으며 한 번 연소하면 격렬한 화학반응을 일으키며 대량의 독성 연기를 내뿜는 특징이 있으며, 이 특징을 이용해 만든 것이 백린탄이다

팔레스타인 UN 난민구제사업국 학교에 투하된 이스라엘군의 155mm 백린탄

현재 이 사건은 3.7 완전작전으로 불리는데, 판문점 도끼만행 당시 '미루나무 절단 작전', '1차 연평해전', '대청해전, '서부전선 포격'등과 더불어 휴전 이후 북한군의 도발을 성공적으로 격퇴한 모범사례로 평가받는다

 

한편 이 사건에서 박정인 장군은 더 나아가 사단내 모든 차량을 DMZ에 집결. 밤이 되자 북한군 초소를 향해 헤드라이트를 일시에 켠다

 

백린탄에 두들겨 맞은 북한군은 이를 총공격으로 알았고, 김일성은 전군에 비상을 발령하는 등 요란을 떨었다


1975년 귀순한 북한군 유대윤 소위는 이 사건에 대해 "그날 백골 포병부대의 포탄 1발이 정확히 막사에 명중해 인민군 36명이 사망했다. 이 사건으로 북한군은 백골부대에 대치되는 지역에 배정받길 꺼려 하며 백골부대를 가장 무서워한다"고 말하기도 했다

박정인 사단장

실제 북한군은 이 사건으로 치욕이 된 해당 사단을 없애고 백골부대에 대응하기 위해 새로운 사단 2개를 배치했다.

 

 

 

 

 

이 사건을 지휘한 박정인 장군은 ‘남북협상’기간이었기에 약 1달 뒤에 불명예전역을 하게 된다

 

하지만 후일담도 명작인데, 사건이 일어난지 12년 후인 1985년 남북 이산가족 평양방문단의 일원으로 함경남도 도민회 이상순 회장이 평양에 갔을 때 북한 정치 보위부의 고위 방문단이 “함경남도 출신에 박가 성을 가진 그 요란한 사단장을 요즘 뭘 하오”라고 묻기도 했다

 

한편 백골부대에서는 매년 해당 작전을 재연하며 기념행사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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