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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스터리

과거 일본 미제 사건인 '변태성욕 정화조 사건'은 원전 사고를 미리 예견했다?

by PickUp 2017. 12.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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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9년 일본 후쿠시마현의 정화조 안에서 시신이 발견된 의문사 사건이 발생한다.

 

정화조 안의 시신은 후쿠시마현의 한 마을의 초등학교 여교사가 제일 먼저 발견했는데, 그녀는 경찰에 ‘사람의 발’같은 것을 발견했다고 신고했다.

출동한 경찰과 소방관들은 중장비를 동원해 정화조를 파낸 다음 시신을 깨냈는데, 시신은 남성이었고 윗옷을 벗은 채로 정화조 안에 있었다.

벗은 윗옷은 가슴에 돌돌 말아 굳게 쥐고 있는 상태였는데, 부검결과 저체온과 흉부순환장애라는 결론이 내려졌다.

시신은 26살의 젊은 남성으로 드러났는데, 경찰은 의사가 내린 사인의 결론을 근거로 이 남자가 여교사를 훔쳐보려고 정화조에 들어갔다가 빠져나오지 못해 갇혀서 얼어죽은 것으로 결론을 내린다.

여교사는 발을 봤다고 증언했는데, 사건은 위 그림처럼 얼굴로 바뀌어 마무리 됐다.

 

이 남성은 생전 후쿠시마 원자력 발전소의 유지보수 회사에서 직원으로 근무하고 있었는데, 활달하고 예의바른 청년으로 마을 주민들은 이 청년이 그럴리 없다며 강하게 반발했었다.

마을 주민 4천여명이 재수사를 촉구하는 서명서를 경찰에 제출할 정도였지만, 이 사건은 ‘변태 성욕이 부른 사망사건’으로 결국 마무리 된다.

 

하지만 미스터리가 남게 되는데..

당시 후쿠시마 제2원자력 발전소에서 사고가 발생한다. 재순환 펌프의 부품이 깨져서 깨진 부품의 일부가 원자로 안에 끼어버린 건데, 이 사건 이전 1988년 연말부터 이미 재순환 펌프에 이상이 있다는 경보가 울렸었다.

그러나 원자력 발전소에선 이를 무시하고 원자로를 계속 가동했고 결국 레벨 2에 해당하는 사고가 터졌던 것.

당시 책임자들이 신년 휴가를 간 탓에 대신 원자로를 책임지고 있던 직원이(따지고보면 이 사람의 책임이 아님에도)도쿄 전력 본사에 소환되어 책임을 추궁받았는데, 그는 투신자살을 한다.

이 직원은 정화조에서 의문사 당한 남성의 동료였다.

이러한 결과로 시민단체에선 정화조에서 의문사한 남성이 동료의 죽음의 진상을 파헤치다가 죽음을 당하게 된 것이 아니냐는 주장을 한다.

이후 7년이 지난 1996년. 사건이 잊혀졌을 쯤. 발전소에서 현장 감독을 역임했던 ‘히라이 노리오’가 뜬금없이 언론을 불러 실제 후쿠시마 원자력 발전소는 폭발이 일어나기 전부터 중대한 결함이 있었다는 사실을 폭로한다.

 

히라이 노리오는 원자력 발전소에 중대한 결함이 있는데, 발전소 측에서는 이 문제에 대해 조치는 커녕 은페하기만 한다고 폭로했다.

 

즉, 정화조에서 발견된 남성은. 동료가 자살하자 후쿠시마 원자력 발전소의 결함을 언론에 폭로하려다가 죽임을 당했다는 것이다.

 

▲1996년 일본 원자력 은폐 사실을 밝히는 히라이 노리오

 

당시 히라이 노리오가 남긴 글 中에서

후쿠시마 원전의 위험성을 나타낸 단락

<예를 들면, 도쿄 전력의 후쿠시마 발전소에서는, 원자로에 철사를 빠뜨린 채 운전을 하고 있어, 조금만 잘못해도 세계를 휩쓸 대형 사고가 일어날지도 모를 상황입니다. 저는 철사를 떨어뜨렸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지만, 그것이 어느 정도의 대형 사고로 이어질지에 대한 인식은 전혀 없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노후 된 원전도 위험하지만, 새로 지은 원전도 비전문가가 만들었다는 점에서 위험하기는 마찬가지입니다.>

도쿄전력의 무지에 대해 당시 비판한 단락

<도쿄전력의 후쿠시마 원전에서, 긴급원자로냉각장치(ECCS)가 가동되었던 대형사고가 발생했을 당시, 요미우리 신문에 ‘현지전문관 상황 파악 전혀 못해’라는 보도가 있었습니다만, 그 당사자는, 자신이 담당하고 있는 원전에서 대형 사고가 발생했다는 것을, 다음 날 신문을 보고나서야 알게 되었습니다. 왜 전문관이 아무 것도 몰랐던 것일까요. 그 이유는, 전력 회사 사람들은 전문관이 생무지라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에, 화재 현장과 같은 소요(騷擾) 속에서, 어린아이 가르치듯, 하나하나 설명할 시간이 없어서, 그 사람을 현장에 부르지 않고 방치해 두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아무 것도 몰랐던 것입니다.>

도쿄전력의 은폐를 언급한 단락

<원전의 사고가 있어도 자치단체 등에서 부랴부랴 안전선언을 발표하고, 전력회사는 그 보다 한술 더 떠서 사건을 은폐하려 합니다. 게다가, 국민 대부분도 이런 일에 별로 관심이 없어서, 일본의 바다는 지금도 오염되고 있습니다. 몬쥬사고 때처럼 말이죠.>

히라이 노리오는 1996년 폭로 직후 1997년 1월에 숨을 거둔다. 당시 히라이 노리오는 토후쿠 전력 온나가와 원자력 발전 금지 재판 원고 특별 보좌인, 후쿠시마 제2원자력 발전3호기운전금지 소송 원고 증인이었다.

그리고 히라이 노리오 폭로사건이 벌어지고나서 약 15년 후 후쿠시마 원전은 완전 폭발해 버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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